피싱

짧은 이야기 2014. 7. 20. 01:58

새벽 12 38, 잠들기는 아쉽고 컴퓨터에 앉아 별 쓸모 없는 글, 기사, 하등 도움 안 되는 것들만 보면서 체력을 소진시키고 있었다

 

띵동

 

메신저의 소리에 문득 놀랐지만,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한번 더 놀랐다.

 

잘 지내요? “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 하지만 보낸 사람이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반한 사람이자 다시는 볼 일 없을 사람이자 내게 메시지를 보낼 만큼 날 궁금해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그럭저럭 지내요. 팀장님은 잘 지내세요? “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딱 부러지게 목표를 세워놓고 달려가지 못한 채 밍기적 거리며 시간을 허비하다 뒤늦게 취업했던 탓에 나보다 어린 팀장을 만났다그는 나와는 반대로 학교와 군대를 빈틈없이 지나서 이 회사만 7년 근속하고 대기업으로 이직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스마트한 이미지도 멋지고 차가운 듯 조용한 분위기도 멋지고 이야기하면 의외로 상냥한 구석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네 잘 지내요. “

 

사실 어쩌면 이 사람 메신저 해킹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메신저를 이용한 피싱이 늘고 있고 얼마 전에도 알고 지내던 얌전한 언니가 어울리지 않게 껄렁껄렁한 말투로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이직을 하고 두 달 동안 전혀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하는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내가 그의 팀원으로 있었다고 해도 사실 같이 근무한 건 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탓에 퇴사하는 날까지 따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거나 한 일도 없었다. 물론 다음에 시간되면 식사나 하자느니 하는 약속 또한 나와는 하지 않았다. 이해는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도 기억하고 웃는 모습도 기억하고 높은 콧대와 깊은 눈과 조금 큰 듯한 머리도 근육 량이 부족해 보이는 몸매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를 기억시킬 자신이 없어서 이 마음이 희미해질 때까지 보고 싶어하고 이야기 하고 싶어하고 메신저를 켰다 껐다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 근데 부탁이 있어요

 

정말 이 분 해킹 당하셨나 보네. 피싱인가 보다.. 알면서도 어쩐지 나도 돈 없어 이 사기꾼아!!라고 외치기에는 조금 만 더 그의 이름이 걸린 메신저에서 나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읽고 조금만 더 그가 내게 말을 건 것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말씀하세요

제가 지금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요..”

네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해요. 좀 많이 힘들거든요.”

 

피싱하는 사람이 좀 소심한지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맴맴 돈다. 그래서 조금 고마워져서 천원이라도 보내줄까 고민됐다.

 

알았어요 말씀하세요. “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요

병원은 가셨어요? 걱정 많이 되시겠다.”

. 병원에 왔고 병원에서 큰 병은 아닌데 수술 해야 한다 그래서요..”

아 네…”

근데 어려운 수술도 아니고 금새 회복되실 거래요.”

제가 어머니 어서 쾌유하시도록 기도할게요.”

 

그리고는 한 3분인가 말이 없다. 힘내요. 피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요. 그래 갖고 먹고 살겠어요. 용기를 내요. 텔레파시가 통 했는지 이내 메신저가 울렸다.

 

고마워요. 정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 인데요 머.”

 

그리고 한동안 또 말이 없다. 그의 이름을 가진 피셔와 대화하는 것에 점점 흥미를 잃었고 대답없는 메신저 창을 보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앱으로 방금의 메시지를 곱씹어 보다가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놀라 전화를 받았다.

 

민혜씨..”

 

잔뜩 물기 어린 잠겨있지만 분명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를 듣고싶어 몇번이고 전화기앞에서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런 그목소리가,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보고 싶어요. 한번만 만나주세요. ”

 

 

fin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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