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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3 너는 남았지.
  2. 2020.10.12 다리가저려서
  3. 2020.06.02 그릇
  4. 2014.07.20 발목 1
  5. 2014.07.20 피싱 1

그는 내게 라면을 끓여먹고 냄비 안쪽 벽에 남은 기름때처럼 꼴뵈기 싫게 남았고, 또 다른 그는 길게 길게 씹었던 껍마냥 지겨워죽겠는데 뱉어낸순간 미안함과 후련함으로 남았다.

그런데 너는 말이야.

너는 너는 실체가 없는 채로 뭘 붙든지도모르는채 붙들고있어서 손가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관절염으로 남았어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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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 헤어진 네가 나와서 우린 손을 잡고 웃으며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차를 마셨지. 네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가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도 갔어. 햇살은 눈부시고 발걸음은 경쾌하고 미술관의 하얀돌담길을 지나 길가의 악세사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너는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나는 내일또 만나자고 했지. 너는 슬픈얼굴로 우린 이미 헤어졌고 이건 꿈인걸 너도 알잖아 라고 말했어. 너는 너를잊지못하는 나였고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가 눈물이 되고 파도가 될듯이 울었어.

베개를 흠뻑 적시며 깨어나 자명종 시계를 봤는데 허무할만큼 출근시간과 먼시간이라 다시 누웠어.

나는 네가 너무 멀리가서 더이상 보이지않는 뒷모습을 쫓아 그자리에 구겨져 바라보고 있는것같아. 아무리 기다려도 네 모습이 보이지않을거란걸 알고있는데 다리가 저려서 일어날수가 없네.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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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카테고리 없음 2020. 6. 2. 08:56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펄펄 끓던 국도
전자레인지도

견뎌내고

아직 이 하나 나가지 않아서

평범하게 설거지되고
건조대에 엎드려서 꼬박 졸다가

찬장 위에 다시 앉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나 아직 이 하나 나가지 않았어서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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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카테고리 없음 2014. 7. 20. 23:34
내 여자친구는 발목이 굵다. 다리는 평범한데 발목이 굵어서 아톰다리같다. 그게 컴플랙스라며 도통 치마를 입지않는다. 그래서 치마 좀 입어보라고 꼬셨더니 굳이굳이 내가 쇼핑을 같이 가야한다며 2시간째 끌려다녔다. 뭘입어도 이쁜데 뭐가 맘에 안드는지 다른 가게 비슷한 치마를 입어본다.

"귀엽다니까~"
"이쁘다 그러면 어디 덧나냐?"

라며 흥하고 돌아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온다. 내가 예쁘단 말을 안해서 조금씩 열받아 하면서 새로 입어보고 입어보고 했던거였나보다. 나도 사실 예쁘다고 해주고 싶은데 그 발목을 보고있으면 아장아장 걷는 조카가 생각나 귀엽단말이 나오고 만다.

" 너 너무해 나 치마 안~입을거야"

오늘따라 삐지는 표정도 조카같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뭐야 그 웃음? "

여자친구가 점점 더 화가 나고있다는 걸 아는데 웃음을 멈출수가 없다.

" 너 계속 웃고만 있을거야? 나 집에 갈거야"
" 가긴 어딜가~"

씩씩거리며 뒤돌아선 그 애를 껴안자 배속에 간질거리며 날 웃게 만들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와버렸다.


"니가 귀여워서 미칠것같아"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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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짧은 이야기 2014. 7. 20. 01:58

새벽 12 38, 잠들기는 아쉽고 컴퓨터에 앉아 별 쓸모 없는 글, 기사, 하등 도움 안 되는 것들만 보면서 체력을 소진시키고 있었다

 

띵동

 

메신저의 소리에 문득 놀랐지만,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한번 더 놀랐다.

 

잘 지내요? “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 하지만 보낸 사람이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반한 사람이자 다시는 볼 일 없을 사람이자 내게 메시지를 보낼 만큼 날 궁금해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그럭저럭 지내요. 팀장님은 잘 지내세요? “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딱 부러지게 목표를 세워놓고 달려가지 못한 채 밍기적 거리며 시간을 허비하다 뒤늦게 취업했던 탓에 나보다 어린 팀장을 만났다그는 나와는 반대로 학교와 군대를 빈틈없이 지나서 이 회사만 7년 근속하고 대기업으로 이직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스마트한 이미지도 멋지고 차가운 듯 조용한 분위기도 멋지고 이야기하면 의외로 상냥한 구석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네 잘 지내요. “

 

사실 어쩌면 이 사람 메신저 해킹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메신저를 이용한 피싱이 늘고 있고 얼마 전에도 알고 지내던 얌전한 언니가 어울리지 않게 껄렁껄렁한 말투로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이직을 하고 두 달 동안 전혀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하는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내가 그의 팀원으로 있었다고 해도 사실 같이 근무한 건 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탓에 퇴사하는 날까지 따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거나 한 일도 없었다. 물론 다음에 시간되면 식사나 하자느니 하는 약속 또한 나와는 하지 않았다. 이해는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도 기억하고 웃는 모습도 기억하고 높은 콧대와 깊은 눈과 조금 큰 듯한 머리도 근육 량이 부족해 보이는 몸매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를 기억시킬 자신이 없어서 이 마음이 희미해질 때까지 보고 싶어하고 이야기 하고 싶어하고 메신저를 켰다 껐다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 근데 부탁이 있어요

 

정말 이 분 해킹 당하셨나 보네. 피싱인가 보다.. 알면서도 어쩐지 나도 돈 없어 이 사기꾼아!!라고 외치기에는 조금 만 더 그의 이름이 걸린 메신저에서 나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읽고 조금만 더 그가 내게 말을 건 것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말씀하세요

제가 지금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요..”

네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해요. 좀 많이 힘들거든요.”

 

피싱하는 사람이 좀 소심한지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맴맴 돈다. 그래서 조금 고마워져서 천원이라도 보내줄까 고민됐다.

 

알았어요 말씀하세요. “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요

병원은 가셨어요? 걱정 많이 되시겠다.”

. 병원에 왔고 병원에서 큰 병은 아닌데 수술 해야 한다 그래서요..”

아 네…”

근데 어려운 수술도 아니고 금새 회복되실 거래요.”

제가 어머니 어서 쾌유하시도록 기도할게요.”

 

그리고는 한 3분인가 말이 없다. 힘내요. 피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요. 그래 갖고 먹고 살겠어요. 용기를 내요. 텔레파시가 통 했는지 이내 메신저가 울렸다.

 

고마워요. 정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 인데요 머.”

 

그리고 한동안 또 말이 없다. 그의 이름을 가진 피셔와 대화하는 것에 점점 흥미를 잃었고 대답없는 메신저 창을 보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앱으로 방금의 메시지를 곱씹어 보다가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놀라 전화를 받았다.

 

민혜씨..”

 

잔뜩 물기 어린 잠겨있지만 분명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를 듣고싶어 몇번이고 전화기앞에서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런 그목소리가,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보고 싶어요. 한번만 만나주세요. ”

 

 

fin

Posted by 리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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