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공원벤치에 앉아 일행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손은 재촉받지도 않고 자유롭게 작은 노트위를 슥슥 훑었다. 뒤로 모아 묶은 짧은머리와 삐죽삐죽 튀어나온 잔머리들. 얇은 모자티 속에 셔츠와 겉에 걸친 얇은 자켓과 자켓주머니에 둥그렇게 들어가있는 핸드폰과 접어입은 파란청바지와 낮은 파란 캔버스화. 그리고 머리위에는 빨간 단풍나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빨간 단풍잎들..
그녀는 사소하게 아름답다.
부스럭부스럭 부시시한 늦잠에 깨어난 아침처럼.
창틀에 비집고 들어온 따스한 햇빛처럼.
환기하려고 연 창으로 갑자기 들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그녀는 막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행복해보인다.
그녀옆으로 어떤 남자 하나가 앉는다. 그리고 벤치에 앉기전에 막 따려고 했던 음료수를 따지않고 그녀에게 내민다.
그녀는 양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음료수를 쳐다본다.
그는 그녀의 눈앞에서 음료수를 딴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내밀었다.
그녀는 오른쪽을 샌드위치에서 떼어내서 음료수를 받는다. 그리고 이제 그를 본다.
" 독같은거 안들어있으니까 걱정말아요 "
그녀는 답답해보였다. 입안엔 아직도 가득 샌드위치가 남아있어 말할상황이 아닌듯싶다. 뭐라고 말하고싶은걸까.
" 원래는 제가 마시려고 했는데.."
남자는 고개를 젖히고 얘기를 시작했다.
" 마치 그런기분이 들었거든요. 그쪽과 저는 동화속에 늘 나오는 공주와 왕자 "
" 개구리 "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나 짧고 명확해서 오히려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네? "
" 개구리 나라의 왕자와 달팽이 나라의 공주 "
그는 살짝 낮게 웃었다.
" 그래요. 개구리 나라의왕자와 달팽이나라의 공주는 서로 사랑하고있었어요. 둘은 함께 좋아하는 개울가에서 발끝에 찰박찰박 닿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걷곤했어요. 너무나행복하게 둘이 만들어나갈 미래에 대한이야기들로 함께하는 시간들을 채워갔어요. 그런데 어느날 무시무시한 괴물 뱀이 나타나서 달팽이 나라의 공주를 잡아가버렸어요. 개구리왕자는 팔짝팔짝 뛰면서 달팽이공주를 구하려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무지개를 건너고 높은 폭포를 거슬러올라가서 북으로, 북으로 괴물뱀이 산다는 산의 꼭대기를 향해, 물기없는 바위를 오르고 올라서 발은 모두 피범벅이 되도 개구리왕자는 굴하지않았어요. "
그녀는 다시 샌드위치를 한입물고 음료수를 한모금마시고 얘기를 듣는다.
"개구리왕자는 결국 괴물 뱀이 산다는 산꼭대기의 깊고 음산한 굴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개구리왕자는 너무나 지쳐있었어요. 사랑하는 달팽이공주를 위해 온힘을 다해서 뱀의 목에 칼을 겨눴지만, 결국 괴물뱀의 한입에 덥석 "
" 한입에 덥석 "
" 물려서 꿀꺽하고 잡아먹혀버렸어요."
" 휴우~ 꿀꺽 "
" 개구리나라의 왕과 달팽이나라의 왕은 자식들을 위해 군대를 만들고 괴물뱀을 쓰러뜨렸고 달팽이공주는 무사히 구조됬지만 개구리왕자는 피투성이가 된 작은 발밖에 남아있지 않았어요. 공주는 그발을 껴안고 몇날몇일을 울다가 숨졌데요."
" 슬프네요 "
그는 그녀의 어깨에 빨간 단풍잎을 떼어내면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 당신은 아직도 내 발을 간직하고 있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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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왜 내가 써놓고서 혼자서 두근거려하는걸까. 이거.ㅋㅋㅋ
2004.10.08 18:29